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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화면 가득 채워진 무수한 코드와 텍스트를 바라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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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차가운 기호들은 대체 언제부터 진짜 뜻을 가지게 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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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인공지능은 그저 기호를 이리저리 맞추는 규칙 게임을 하고 있을 뿐인데, 왜 우리는 거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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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느끼고 의미를 읽어내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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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21,000 --> 00:00:28,000
이 거대하고도 기묘한 질문의 실마리를 찾고 싶어서, 저는 아주 두껍고 불친절하기로 유명한 책 한 권을 책상 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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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려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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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더글러스 호프스태터가 쓴, 괴델, 에셔, 바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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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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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펼치면 당혹스럽기 그지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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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38,000 --> 00:00:45,000
철학책 같기도 하고, 수학책 같기도 한데, 느닷없이 음악 에세이가 튀어나오고 이상한 그림들이 눈을 어지럽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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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혼란스러운 첫인상이야말로 저자가 의도한 대화 방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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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바흐의 정교한 대위법 음악, 에셔의 기하학적이고 모순적인 그림, 그리고 수학자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를 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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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추어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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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아주 단순하지만 묵직한 질문을 던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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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뜻도 없는 기호들이 특정한 규칙과 구조 안에서 움직일 때, 어떻게 스스로를 가리키고 의미를 만들어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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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읽은 첫 부분에서 저자는 독자들에게 아주 단순한 기호 게임을 제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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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엠유 퍼즐과 피큐 시스템이라는 장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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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1:19,000 --> 00:01:25,000
아무런 뜻도 없는 알파벳 세 개를 주고, 정해진 규칙에 따라 글자를 지우거나 덧붙여 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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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1:25,000 --> 00:01:29,000
처음에는 그저 지루하고 무의미한 손장난처럼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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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참 신기한 일이 일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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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무의미한 규칙 놀이를 계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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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면, 어느 순간 이 기호들의 움직임이 우리가 현실에서 쓰는 덧셈이나 뺄셈 같은 수학적 사실과 딱 맞아떨어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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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이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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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 자체에는 아무런 뜻이 없었는데, 그 기호들이 맺고 있는 구조적 관계가 현실 세계와 대응하는 순간, 기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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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의미의 통로로 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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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1:52,000 --> 00:01:55,000
저자는 이것을 동형성이라고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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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는 기호 그 자체에 숨겨져 있는 것이 아니라, 구조와 구조 사이의 대응 관계에서 피어난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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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목을 읽으며 저는 제가 매일 다루는 일들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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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2:07,000 --> 00:02:14,000
요즘 많은 이들이 인공지능을 공부하고, 또 개인 지식 노트를 정리하며 나만의 데이터베이스를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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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2:14,000 --> 00:02:20,000
저 역시 노트를 링크로 연결하고 지식을 축적하는 지식 관리 시스템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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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2:20,000 --> 00:02:22,000
하지만 가끔 회의감이 들 때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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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에 링크를 수백 개 걸어두고, 정보를 가득 쌓아두면 무엇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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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정말 내 생각이고 내 지식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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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그 질문에 아주 명쾌한 힌트를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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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노트를 많이 모으거나 링크를 촘촘하게 거는 것만으로는 의미가 생기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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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지식 노트라는 작은 형식 체계가, 내가 살아가는 현실의 문제, 내 일의 맥락과 단단하게 대응할 때 비로소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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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들은 살아 움직이며 의미를 낳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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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기호의 나열이 진짜 지혜로 변하는 순간은 바로 그 대응 관계가 만들어질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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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가지 제 마음에 깊이 남은 것은 체계 안과 체계 밖의 차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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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즐의 규칙에 갇혀 기호만 이리저리 바꾸는 사람은 퍼즐을 영원히 풀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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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전체 규칙의 한계를 바라보는 사람, 즉 체계 밖으로 걸어 나오는 사람만이 문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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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을 깨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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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일상도 비슷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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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주어지는 루틴과 규칙에 파묻혀 정신없이 기호를 조작하듯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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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가끔은 그 시스템 밖으로 걸어 나와 나 자신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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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금 어떤 게임을 하고 있는지, 이 규칙의 한계는 무엇인지 관찰하는 주체가 되어야 비로소 삶의 주도권을 쥘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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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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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델, 에셔, 바흐의 첫 장을 덮으며 저는 제 업무 노트를 정리하는 방식을 조금 바꾸기로 마음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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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정보를 분류하고 링크를 연결하는 규칙에만 집착하지 않으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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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이 노트가 오늘 나의 고민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내 행동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 그 대응 관계를 기록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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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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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에 갇히지 않고, 진짜 의미를 낳는 노트를 만들기 위해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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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세상의 정해진 규칙대로 열심히 살아가는 데 피로를 느끼는 분들, 혹은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의 마음과 지능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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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이 무엇인지 깊이 고민하는 기획자와 개발자분들에게 권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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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어렵고 두꺼운 책이지만, 한 페이지씩 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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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면 생각의 지평이 완전히 넓어지는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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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한 문장 독후감은 이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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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는 고립된 단어 속에 있지 않고, 서로를 비추는 관계 속에서 태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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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매일 수많은 기호를 소비하며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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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여러분이 만들어낸 기호들은 삶의 어떤 부분과 의미 있는 대응 관계를 맺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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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4:41,000 --> 00:04:43,000
그 질문을 품은 채, 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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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으로 발걸음을 옮겨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