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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 위에 펼쳐진 노트 한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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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위에 내가 처음으로 적은 문장은 “협업은 합의가 아니라 생산적 불일치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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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장을 보고 나는 『천 개의 고원』이라는 책을 다시 펴보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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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책을 읽을 때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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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느꼈던 답답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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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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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은 많은데, 그 개념들이 실제 내 작업이나 글쓰기,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어떻게 움직이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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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유진 홀랜드가 쓴 이 안내서를 집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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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뢰즈와 가타리가 어떻게 함께 이 책을 썼는지를 먼저 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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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전 내 가설은 단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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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이 함께 쓴 철학책이라면, 각자의 전문성을 잘 섞어서 하나의 단단한 체계를 만들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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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홀랜드는 정반대 이야기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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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뢰즈는 서양철학의 긴 계보를 꿰고 있는 철학자였고, 가타리는 라 보르드 클리닉과 정치 현장에서 욕망과 제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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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사람을 어떻게 움직이는지 보고 있던 실천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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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둘은 서로의 결핍과 과잉을 그대로 드러내며 만났고, 그 불일치 자체가 새로운 사유를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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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며 가장 불편했던 점은, 내가 여전히 “이 개념을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는 태도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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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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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랜드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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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정답을 찾는 교과서가 아니라, 서로 다른 장면을 연결해 보는 실험실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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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모든 것을 완벽히 이해하려 들면 오히려 막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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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이 개념은 어디와 어디를 연결하는가”를 물어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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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이 내 노트 쓰는 방식까지 건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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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동안 개념을 한 문장으로 정의하고, 그 정의를 내 작업에 붙이려 애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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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책은 오히려 개념을 고정하지 말고, 연결되는 분야를 여러 개 찾아보라고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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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약력조차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그 사람이 어떤 조건에서 사유했는지를 읽는 입력 장치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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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요즘 나는 노트를 쓸 때 한 가지 실험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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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을 만날 때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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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개념이 내 글쓰기, 프로젝트, 그리고 사람들과의 관계 중 어디와 접속할 수 있는지를 세 가지씩 적어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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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서툴지만, 이전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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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이 조금 더 살아 움직이는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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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혼자서 복잡한 문제를 붙들고 있는 사람, 특히 글을 쓰거나 무언가를 만들거나 가르치는 일에 자주 부딪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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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 특히 의미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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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을 전공하지 않아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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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나 혼자서 이걸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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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해야 해”라는 압박에서 벗어나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안내서가 주는 한 가지 태도만으로도 충분히 흔들릴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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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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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뢰즈와 가타리가 함께 철학을 만든 이유는 결국, 한 사람의 머릿속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곳을 둘 사이의 장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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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어주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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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장치의 첫 번째 이름이 ‘생산적 불일치’라는 사실을, 나는 이제야 조금씩 받아들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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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읽고 싶은 것은, 이 불일치를 실제 작업에서 어떻게 유지하고 다듬을 수 있는지에 대한 기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