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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오래된 노트북을 열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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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02,000 --> 00:00:07,000
서로 전혀 다른 시점에 적힌 메모들이 한데 모여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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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07,000 --> 00:00:08,000
시간 순서대로 정리하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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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08,000 --> 00:00:10,000
오히려 이상하게 느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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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10,000 --> 00:00:18,000
삶이 정말 하나의 선으로 이어지는 이야기인지, 아니면 여기저기서 불쑥 연결되는 조각들의 모음인지 문득 의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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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18,000 --> 00:00:19,000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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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19,000 --> 00:00:26,000
그때 집어 든 책이 유진 홀랜드가 쓴 『Deleuze and Guattari's A Thous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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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26,000 --> 00:00:30,000
Plateaus: A Reader's Guide』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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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30,000 --> 00:00:34,000
특히 프루스트에 대한 부분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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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34,000 --> 00:00:41,000
프루스트는 의지로 떠올리는 기억보다, 지금 이 순간의 감각이 갑자기 과거의 장면을 불러오는 비자발적 기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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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41,000 --> 00:00:42,000
주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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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42,000 --> 00:00:46,000
그때 삶은 연대기처럼 깔끔하게 정렬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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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46,000 --> 00:00:52,000
시간들이 서로 뛰어넘어 접속하고, 하나의 생은 그 접속들의 패치워크처럼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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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52,000 --> 00:00:56,000
들뢰즈와 가타리는 이 이미지를 사유의 형식으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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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56,000 --> 00:01:03,000
주체는 모든 것을 지배하는 중심이 아니라, 연결들의 결과로 생겨나는 잔여에 가깝다는 관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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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1:03,000 --> 00:01:05,000
처음엔 이 생각이 낯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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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1:05,000 --> 00:01:12,000
나는 여전히 삶의 사건을 원인과 결과로 정리하려 했고, 책을 읽으면 한 줄 요약으로 압축하려 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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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1:12,000 --> 00:01:18,000
그런데 그 방식이 오히려 중요한 연결을 지워버린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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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1:18,000 --> 00:01:20,000
노트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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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1:20,000 --> 00:01:27,000
시간 순서대로 잘 정리된 노트일수록, 서로 다른 메모 사이에서 튀어나오는 뜻밖의 접속이 사라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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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1:27,000 --> 00:01:30,000
그래서 한 가지를 바꿔보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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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1:30,000 --> 00:01:35,000
최근에 적은 노트 하나를 시간 순서가 아니라 연결 순서로 다시 배치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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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1:35,000 --> 00:01:40,000
한 기억이 다른 기억을 불러온 사례를 찾아 적어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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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1:40,000 --> 00:01:48,000
내 작업에서 있었던 한 사건을 ‘왜 그렇게 됐는가’가 아니라 ‘무엇과 무엇이 만나 어떻게 변형됐는가’로 다시 설명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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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1:48,000 --> 00:01:49,000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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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1:49,000 --> 00:01:56,000
아직 어색하지만, 이 관점으로 보면 그동안 보이지 않던 패턴이 조금씩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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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1:56,000 --> 00:02:04,000
이 책은 삶을 깔끔한 이야기로 정리하고 싶은 사람, 특히 노트를 쓰고 글을 쓰고 프로젝트를 설계하는 사람에게 의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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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2:04,000 --> 00:02:05,000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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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형적인 요약만으로는 담아내기 어려운 다중적인 연결을 보고 싶은 사람에게 특히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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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2:12,000 --> 00:02:19,000
결국 프루스트가 보여준 것은 기억의 패치워크였고, 들뢰즈와 가타리는 그걸 사유의 방식으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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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게 남은 한 문장은 이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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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2:21,000 --> 00:02:26,000
삶은 직선이 아니라, 예기치 않게 이어지는 연결들의 패치워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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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실험해 보고 싶은 것은, 제 삶의 한 사건을 접속과 변형의 관점에서 다시 써보는 일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