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화 이후의 경쟁력

AI가 평균적인 완성도를 끌어올린 뒤에도 남는 경쟁력은 의미 있는 차이를 발견하고 공동체가 사용할 가치로 만드는 능력이다.

자동화 이후의 경쟁력

AI 시대에는 ‘의미 있는 차이’를 발견하고 만들어내는 능력이 중요하다

AI 시대를 이야기할 때 가장 자주 등장하는 단어는 자동화다. 글쓰기, 번역, 요약, 이미지 제작, 코딩, 자료 조사, 고객 응대까지, 이전에는 사람이 직접 처리해야 했던 수많은 작업이 빠르게 자동화되고 있다. 기업은 생산성 향상을 말하고, 개인은 시간을 절약할 방법을 찾는다.

자동화는 분명 중요하다. 그러나 자동화 자체가 오래 지속되는 경쟁력이 될 수 있을까. 누구나 비슷한 AI를 사용하고, 비슷한 작업을 자동화하며, 비슷한 수준의 결과물을 만들 수 있게 된다면 자동화는 곧 기본 조건이 된다. 모두가 쓸 수 있는 능력은 개인에게 편의를 주지만, 그 자체로 뚜렷한 차이를 만들지는 못한다.

그렇다면 자동화가 보편화된 이후에도 남는 경쟁력은 무엇일까. 나는 그것이 같은 것 안에서 의미 있는 차이를 발견하고, 그 차이를 새로운 가치로 만들어내는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1. 자동화는 능력의 평균을 끌어올린다

생성형 AI의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더 많은 사람이 일정 수준 이상의 결과물을 빠르게 만들도록 돕는 데 있다. 과거에는 숙련자의 머릿속에만 축적되어 있던 표현 방식, 업무 절차, 문제 해결 방법이 이제 AI를 통해 널리 배포되고 있기 때문이다. 초보자도 AI의 도움을 받으면 비교적 자연스러운 이메일을 쓰고, 보고서의 구조를 설계하고, 코드를 생성하고, 복잡한 자료를 요약할 수 있다. 오랜 경험을 거쳐야 습득할 수 있었던 능력의 일부가 도구의 형태로 제공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 변화는 실증 연구로도 확인된다. 에릭 브린욜프슨, 대니엘 리, 린지 레이먼드가 고객지원 상담원 5,172명을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생성형 AI를 사용한 상담원의 생산성은 평균 약 15% 향상되었다. 효과는 경험이 적거나 숙련도가 낮은 노동자에게서 특히 크게 나타나, 이들의 시간당 문제 해결 건수는 약 30% 늘었다.[1] 흥미로운 것은 그다음이다. 연구진은 낮은 숙련도의 상담원들이 AI를 사용하면서 높은 숙련도의 상담원과 유사한 방식으로 고객과 소통하기 시작했다는 점도 확인했다.

AI가 모든 사람을 최고의 전문가로 만들어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기본적인 수행 능력의 바닥을 빠르게 끌어올린다. 이것은 사회 전체의 생산성을 높이는 긍정적인 변화이지만, 동시에 새로운 문제를 만든다. 누구나 일정 수준 이상의 글과 이미지, 코드와 기획안을 생산할 수 있다면, 결과물이 깔끔하고 완성도가 높다는 사실만으로는 오래 주목받기 어렵다. 자동화가 널리 보급될수록 ‘잘 만들어진 평균’은 풍부해지고, 풍부해진 것은 희소성을 잃는다.

역설적이게도, 자동화의 확산은 자동화하기 어려운 능력, 곧 고유한 문제의식과 관점, 판단력의 가치를 끌어올린다.

2. AI 시대의 위험은 낮은 품질보다 높은 품질의 획일화에 있다

AI가 가져오는 근본적인 위험은 결과물의 품질이 낮아지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개별 결과물은 좋아지면서도 전체 결과물이 서로 비슷해질 수 있다는 데 있다.

생성형 AI는 방대한 기존 데이터에 나타난 표현과 구조, 이미지와 사고방식의 패턴을 학습한다. 그 덕분에 안정적이고 그럴듯한 답을 빠르게 내놓지만, 많은 사람이 같은 모델을 사용하고 유사한 요청을 입력할수록 사고의 출발점과 결과의 구조 역시 서로 닮아갈 가능성이 커진다. 매끄러운 문장, 안정적인 구성, 익숙한 이미지가 빠르게 생산되는 동안, 그 안에서 낯선 질문과 불편한 관점, 설명하기 어려운 개성은 사라질 수 있다.

아닐 도시와 올리버 하우저의 실험 연구가 바로 이 지점을 보여준다. AI가 제안한 아이디어를 활용해 쓴 단편소설은 평균적으로 더 창의적이고, 더 잘 쓰였으며, 더 재미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집단 전체의 결과물을 비교하자 AI를 사용한 이야기들은 서로 더 유사해져 있었다. 연구진은 이를 생성형 AI가 개인의 창의적 성과를 높이는 동시에 집단적 다양성을 감소시킬 수 있는 현상으로 해석했다.[2]

이 연구가 드러내는 것은 AI 시대의 중요한 긴장이다. 개별 작품의 완성도는 높아지지만, 문화 전체에서 생산되는 관점의 다양성은 줄어들 수 있다. 모든 글이 논리적이고, 모든 이미지가 세련되며, 모든 기획안이 잘 정돈되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들이 서로를 닮기 시작한다면, 우리는 품질을 얻는 대신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의 수를 잃는다.

그래서 AI 시대의 경쟁력은 단순히 좋은 결과물을 만드는 데서 나오지 않는다. 더 중요한 것은 AI가 자연스럽게 제시하는 평균적인 경로 가운데 무엇을 받아들이고, 무엇을 의심하며, 어디에서 벗어날지를 판단하는 능력이다.

3. 차이를 발견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같은 구름을 보고도 사람마다 서로 다른 형상을 떠올린다. 누군가는 동물을 보고, 누군가는 거대한 도시를 보며, 누군가는 오래전에 본 그림이나 잊고 있던 사람을 떠올린다. 구름은 같지만 그 안에서 발견되는 의미는 저마다 다르다.

이 차이는 시력에서 생기지 않는다. 사람마다 살아온 경험과 기억, 관심, 질문이 다르기에 같은 대상도 서로 다른 관계 속에서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차이를 발견한다는 것은 사물 안에 이미 완성된 채 숨어 있던 정답을 찾아내는 일이 아니다. 대상과 자신의 경험을 새롭게 연결하면서,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의미를 출현시키는 일에 가깝다.

이렇게 보면 AI 시대의 인간에게 필요한 핵심 능력은 결과물을 직접 생산하는 능력만이 아니다. 문제를 선택하고, 맥락을 설정하며, 결과의 의미를 판별하는 능력이다. AI가 잘하는 일과 그렇지 못한 일의 경계는 선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비슷해 보이는 두 과제 가운데 하나에서는 매우 뛰어난 성과를 내지만, 다른 하나에서는 그럴듯한 논리를 갖춘 채 틀릴 수 있다. 그러므로 AI를 잘 사용한다는 것은 단순히 명령을 입력하고 결과를 받아들이는 일이 아니라, 언제 AI를 믿고 언제 의심할 것인지, 어느 지점에서 인간의 판단을 개입시킬 것인지 결정하는 일이다.

보스턴컨설팅그룹 소속 컨설턴트 758명을 대상으로 진행된 연구가 이 경계의 존재를 잘 보여준다. GPT-4를 사용한 참가자들은 AI의 능력 범위 안에 있는 과제에서 작업 속도가 25% 이상 빨라졌고 결과물의 품질도 40% 이상 높아졌다. 반면 AI의 능력 범위 밖에 있도록 설계된 복합적인 경영 과제에서는, AI를 사용한 집단이 정답에 도달할 가능성이 오히려 19%포인트 낮아졌다.[3] 연구진은 과제마다 불규칙하게 달라지는 이 경계를 ‘들쭉날쭉한 기술적 전선(jagged technological frontier)’이라고 불렀다.

결국 AI 시대의 전문성은 도구 사용 능력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이 문제는 정말 풀 가치가 있는가. 누구의 관점이 빠져 있는가. 무엇이 지나치게 매끄럽게 정리되었는가. 평균 속에서 어떤 예외가 지워졌는가. 이 결과가 현실에 적용되었을 때 누가 이익을 얻고 누가 불이익을 받는가. 나는 이 결과에 책임질 수 있는가.

차이를 발견하는 능력은 사소한 불일치를 찾아내는 기술이 아니다. 익숙한 질서 안에서 아직 이름 붙지 않은 가능성을 알아보는 판단력이다.

4. 들뢰즈에게 차이는 비교의 결과가 아니라 생성의 원리다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은 AI 시대를 예언하기 위해 쓰인 책이 아니다. 그러나 자동화와 창조성의 관계를 해석하는 데 유용한 철학적 렌즈를 제공한다.

우리는 보통 차이를 두 대상의 비교를 통해 이해한다. A와 B가 먼저 존재하고, 둘을 비교한 뒤 서로 다른 점을 발견한다고 생각한다. 이때 차이는 이미 존재하는 동일한 것들 사이의 간격으로 취급된다. 들뢰즈는 이런 사고방식이 차이를 동일성에 종속시킨다고 보았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완성된 대상들을 비교해 찾아내는 차이가 아니라, 사물과 사건이 서로 다른 모습으로 생겨나게 하는 생성의 힘으로서의 차이다.[4]

들뢰즈의 관점에서 세계는 하나의 원형이 반복적으로 복제되는 장소가 아니다. 반복이 일어날 때마다 조건과 관계가 달라지고, 그 안에서 새로운 것이 출현하는 장소다. 계절은 매년 반복되지만 같은 봄은 돌아오지 않는다. 같은 책을 다시 읽어도 독자는 이전과 다른 문장을 발견한다. 같은 질문을 던져도 시간과 경험이 달라지면 답은 달라진다. 반복은 동일한 것의 복제가 아니라, 차이가 발생하는 조건이 될 수 있다.

이 관점은 AI를 바라보는 데도 그대로 적용된다. AI는 인류가 만든 가장 강력한 반복 장치 가운데 하나다. 문장을 반복해서 생성하고, 이미지를 변형하며, 수많은 가능성을 짧은 시간에 시도한다. 그러나 반복의 횟수가 많다고 해서 새로운 가치가 자동으로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수백 개의 콘텐츠를 생산하더라도 동일한 구조와 동일한 관점을 재현한다면 그것은 생산량의 증가일 뿐이다. 반대로 같은 질문을 반복하더라도 조건을 바꾸고, 낯선 대상을 연결하고, 기존의 답을 의심한다면 그 반복은 새로운 차이를 생성할 수 있다.

AI가 수행하는 반복이 단순한 복제로 남을지, 새로운 차이를 낳는 생성적 반복이 될지는 결국 인간이 무엇을 질문하고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달려 있다.

5. 차이는 경쟁력이면서 동시에 가치의 출발점이다

차이가 있다고 해서 언제나 가치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단지 남들과 다르기만 한 결과는 기이하거나 불편한 것으로 끝날 수 있다. 시장과 사회가 요구하는 것은 무조건적인 다름이 아니라 의미 있는 차이다.

의미 있는 차이는 세 가지 조건을 갖는다. 첫째, 이전에는 충분히 보이지 않았던 문제를 드러낸다. 둘째, 기존의 방식보다 더 나은 경험이나 해석을 제공한다. 셋째, 개인의 독특한 관점을 다른 사람도 이해하고 사용할 수 있는 형태로 만든다.

그러므로 차이의 발견은 창조의 시작일 뿐이다. 발견한 차이를 언어, 제품, 서비스, 교육, 예술의 형태로 구체화할 때 비로소 사회적 가치가 된다. 이 지점에서 창조성은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신비한 능력이 아니다. 멀리 떨어져 있던 것들을 연결하고, 익숙한 대상에서 다른 질문을 끌어내며, 아무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던 작은 차이에 형태를 부여하는 능력이다.

차이는 관찰에서 시작하지만, 가치로 완성된다.

자동화 다음에 남는 질문

산업화 시대에는 동일한 품질의 제품을 반복해서 생산하는 능력이 중요했다. 디지털 시대에는 정보를 찾고 연결하며 유통하는 능력이 중요해졌다. 그리고 AI 시대에는 실행과 표현의 상당 부분이 자동화되고 있다. 결과물을 만드는 비용은 낮아지고, 평균적인 완성도는 높아질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경쟁력은 다음과 같은 능력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크다. 아직 이름 붙지 않은 차이를 감지하는 능력. 그 차이가 왜 중요한지 판단하는 능력. 그 차이에 다른 사람이 경험할 수 있는 형태를 부여하는 능력.

자동화는 반복의 비용을 낮춘다. 차이의 감지는 방향을 찾는다. 차이의 생성은 새로운 가능성을 연다. 그리고 그 가능성이 다른 사람의 삶에 닿을 때 비로소 가치가 된다.

그래서 AI 시대의 중요한 질문은 “얼마나 많은 일을 자동화했는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자동화로 확보한 시간과 능력으로,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어떤 차이를 세상에 만들어냈는가.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은 바로 이 질문을 오래전에 준비해 놓은 철학처럼 보인다. 미래는 반복을 가장 많이 수행하는 사람에게만 열리지 않을 것이다. 반복 속에서 아직 보이지 않던 차이를 발견하고, 그 차이를 공동체가 필요로 하는 가치로 전환하는 사람에게 더 넓게 열릴 것이다.


참고 문헌

[1] Erik Brynjolfsson, Danielle Li, Lindsey R. Raymond, “Generative AI at Work”, The Quarterly Journal of Economics 140(2), 2025, pp. 889–942.

[2] Anil R. Doshi, Oliver P. Hauser, “Generative AI Enhances Individual Creativity but Reduces the Collective Diversity of Novel Content”, Science Advances 10(28), 2024.

[3] Fabrizio Dell’Acqua et al., “Navigating the Jagged Technological Frontier: Field Experimental Evidence of the Effects of Artificial Intelligence on Knowledge Worker Productivity and Quality”, Organization Science 37(2), 2026, pp. 403–423.

[4] Gilles Deleuze, Difference and Repetition, Columbia University Press; Daniel W. Smith, John Protevi, “Gilles Deleuze”,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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